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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학

맬서스와 인구론

by SeanKirk 2022. 9. 11.

1.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의 생애

 

  1766년 영국 서리주 길드포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784년 성직자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로 진학했다. 신학, 수학, 철학 등을 공부하는 등 지적 호기심과 신성한 질서에의 열정을 지녔으나 유머와 재치도 동시에 지닌 사람이었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다니며 머리에 다른 사람들과 달리 흰 분가루 대신 핑크 분가루를 묻히고 다녔는데 이런 유행은 후에 유행하게 되어, 실제로 10년 후 모든 학생이 '캐리비언의 해적'에 나오는 군인들처럼 머리를 땋던 머리를 풀고 다녔으며, 200년 정도 지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핑크색으로 물들이고 다니던 시절이 있던 것으로 보아 유행을 아주 많이 앞서갔던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선천성 구개 파열이 있었지만,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웅변대회를 휩쓸 만큼 노력의 사나이기도 했다. 훤칠한 미남 청년으로 늘 주변 사람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여유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1791년 박사학위를 받고 2년 뒤 전임교수가 되었으며, 1797년 성공회의 성직자로 서품되었다.

  1798년 당시 새로운 세기를 맞기 직전의 기대에 부푼 사람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은 <인구론>을 익명으로 발표하였다. 

  1805년 동인도회사 인재 양성 학교인 이스트 인디아 컴퍼니 칼리지로 자리를 옮겨 역사, 정치, 금융에 대해 강의하여 역사상 첫 번째의 "경제학" 교수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1818년 영국 왕립 학회 회원이 되었고, 1834년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2. 인구 폭발과 멸망의 예언집 <인구론>

   <인구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인구론>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어느 시점부터는 전 세계 인구는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추가적인 전제는 노동자 계층이나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생활 조건의 개선을 위해 출산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당시 자녀의 수는 노동력과 일치하기 때문에 부의 조건이라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많은 자녀의 수였다. 

   인구의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전쟁, 기근, 질병 등의 조건을 포함하는 양성 제어(Positive Check)와 출생률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예방성 제어(Preventive check)의 방법을 주장하였다. 양성 제어라는 것이 어감이 나쁘지는 않지만 생각해보면 사망률을 높여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요인들이 이에 속한다. 예방성 제어라는 것도 양성 제어보다는 덜 잔혹하지만 그만큼 성공 확률도 낮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 당시 어떻게 식구 수에 따라 빈민구제 수당이 지급되는 제도 하에서 하위 계층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

   여하튼, 멜서스의 <인구론>은 현재 사회의 불균형의 문제점을 직간접적으로 예상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 문제나 소득 불균형을 언급함으로 소득재분배와 복지사회와 환경보호 같은 긍정적인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건일 수밖에 없다. 

 

3. 인구론의 문제점

   <인구론>에서 맬서스는 농업과 공업 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구 뿐만 아니라 식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어 질 수 있었고 1인당 소득도 급속도로 늘어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피임에 대한 다양한 방법에 대한 고민도 당시로서는 불가능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우선하여 통계학적으로 오류가 있었다. 단순히 인구 증가율을 무조건 출생률에서 사망율률 뺀 것으로만 본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발표 당시에 바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맬서스는 분명 점진적인 폐지를 주장하였지만 당시의 정치가들은 <인구론>의 내용을 바탕으로 빠르게 빈민 구제법을 손보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학자들은 인구의 변천을 네 단계로 분류하는데, 제1단계는 산업사회 발달 전의 시대로 사망률과 출생률이 모두 높아 인구가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단계이고, 제2단계는 초창기 산업사회로 사망률이 감소함으로 인구가 증가한다. 멜서스는 이 당시에 인구 자료를 수집하였던 것이다. 제3단계는 도시화 현상과 교육의 보급으로 출생률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사망률도 감소하지만 출생률도 줄어들기 때문에 인구의 증가 속도가 무한정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제4단계는 피임법의 발달과 맞벌이 부부가 일반화되어 1~3명의 자녀를 기르려 하기 때문에 인구 수준은 안정기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맬서스가 무조건 비난받아야 했을까? 당시의 연구자료라는 것이 지금처럼 통계학적인 기반 위에 수집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유죄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급한 단순화와 일반화의 오류에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4. 현재의 <인구론>

   이러한 <인구론>의 문제점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실현한 나라로 대한민국을 들 수 있을 것이다. 40년 전 즈음의 표어나 포스터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구본 같이 생긴 모형에서 사람들이 발 디딜 틈이 없어 끝도 없는 우주 공간으로 밀려 떨어지는 포스터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포스터에서 시작되어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까지.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산아 제한 정책이 대한민국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1990년대 중반까지도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0.8명 대의 출산률이 그 결과가 아닐까 한다. 물론 산아 제한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경제학자들은 인구증가가 충반한 경작 가능 토지를 가진 국가의 경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높은 인구밀도는 운송비 절감과 내수 촉진 효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신흥국들은 매년 2% 정도의 인구성장은 생활수준이 하락이 없이도 소화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인구증가율은 3% 정도이고 아시아 국가들은 2% 정도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인구증가로 인한 지구 멸망의 시나리오는 혜성의 지구 충돌보다 확률이 낮다고 볼 수 있겠다. 

 

5. 과연 인구는 적은 게 좋은가, 많은 게 적은가?

   수많은 경제학자들에게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주제인 인구가 많은 게 좋은지 적은 게 좋은지는 각 국가의 지형적, 경제적 위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대한민국의 경우를 본다면 인구가 너무 적어지는 것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은 현재의 취업난은 없어질 것이고, 더욱 풍족한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반대로 인구의 감소에 따른 경제 규모의 축소는 그만큼 취업시장도 규모가 작아질 것이 분명하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의 공동화 문제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인구 유지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도 이민의 문을 해외에 활짝 열어 주어야 하는 시대가 머지않은 때에 도래할 것이다. 

 

6. 맬서스는 과연 인류의 적이었을까? 

   맬서스는 1834년 죽을 때까지도 자신은 인류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하고 다녀야 했다고 한다. 빈민구제법을 없앤 마귀같은 인간으로 평가 받았지만 멜서스가 인류에 남긴, 수 많은 사람이 인용하는 한 마디는 그를 어느 정도는 변호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빈민에게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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